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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 전세 없는 독일의 집문화, 한국과 이렇게 다르다

by dejerry90 2025. 4. 4.

독일에 처음 와서 집을 구하고 살아보니, 한국과는 정말 다른 주거문화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오늘은 전세 없는 독일의 집문화, 한국과 어떤 것들이 다른지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전세 개념은 아예 없고, 주방 없는 집을 만나기도 하며, 집을 구하는 데 엄청난 경쟁이 붙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단순히 ‘사는 공간’을 넘어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화적 요소로서 ‘집’이 자리잡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독일의 집문화에 대해 살면서 직접 겪은 이야기들과 함께 자세히 소개해보려 한다.

 

전세 없는 독일의 집문화
전세 없는 독일의 집문화

 

독일엔 ‘전세’가 없다? 임대 중심의 주거 문화


독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세 없이 월세(Miete)로 거주한다. 한국처럼 큰 목돈을 맡기고 사는 전세 제도는 아예 없으며, 집을 사지 않는 이상 거의 평생 임대 생활을 한다고 보면 된다. 재미있는 점은, 집을 소유한 사람보다 임대해서 사는 사람이 더 일반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대도시에서는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은 월세를 내며 산다.

월세에는 보통 ‘차임(Kaltmiete)’와 ‘관리비(Warmmiete)’가 나뉘어 표기된다.

Kaltmiete는 순수하게 집세만 의미하고, Warmmiete는 난방비, 수도세, 쓰레기 처리비 등 부대비용이 포함된 금액이다.

또 독일에서는 보통 임대 계약 기간이 무제한(Fristlos)인 경우가 많고, 세입자가 원할 때 해지할 수 있는 권리가 강하게 보호된다. 다만 집주인이 원해서 세입자를 내보내는 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세입자 권리가 상대적으로 매우 강한 나라라는 인상이 있다.

 

독일에서 집 구하기: 주방 없는 집? 경쟁률 치열한 임대 시장


독일에서 처음 집을 구할 때 가장 놀랐던 건, 주방이 없는 집(Küche 없음)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부엌이 있는 줄 알지만, 독일에서는 ‘주방 가구’가 세입자 소유인 경우가 많다. 집을 보러 갔더니, 싱크대도, 가스레인지도, 심지어 냉장고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사할 때 주방 가구를 함께 가져가거나, 기존 세입자로부터 사야 하는 일이 흔하다. 이런 경우를 ‘EBK(Einbauküche)’라고 부르며, 완비된 주방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는 집을 고를 때 중요한 요소다.

또한 독일의 집 구하기는 면접을 보는 듯한 경쟁이 동반된다. 인기 있는 집은 수십 명이 한 번에 집을 보러 와서, 마치 입주 오디션처럼 집주인(또는 관리사무소)에게 자기소개서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다:

- 최근 세달치 급여명세서

- 최근 3개월 이내 신용조회서(Schufa) 

- 세입자 추천서(Vormieterbescheinigung) : 필자는 한 번도 제출한 적 없지만 집마다 요구하는 서류는 상이하다

- 자기소개서(Selbstauskunft) : 되도록 독일어로 쓰기를 추천한다

좋은 위치의 집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독일 현지 친구의 추천이나 기존 세입자의 소개로 구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집 구하는 과정에서의 '운'이나 '인맥'도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외에 immobilienscout24, wg-gesucht.de 같은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있고, 한국인은 베를린 리포트, 구텐탁 코리아,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 많이 구하기도 한다. 

 

immobilienscout24
immobilienscout24 사이트 사진

독일식 ‘집’의 의미: 개인 공간에 대한 존중과 자율성

독일에서는 집을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과 휴식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여긴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집에 남을 초대하기보다는, 집을 철저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관리하는 편이다. 파티나 모임도 대부분 야외에서 하거나 카페, 레스토랑에서 이뤄지고, 집은 오롯이 가족 혹은 혼자만의 공간으로 유지한다.

이러한 문화는 이웃 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처럼 자주 왕래하거나 인사하는 문화는 비교적 드물고, 이웃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오히려 예의로 여겨진다. 너무 시끄럽거나 소란스러운 행동을 하면 Hausordnung(주거 규칙)을 위반했다며 경고를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밤 10시 이후엔 조용히 해야 하고 일요일엔 청소기나 세탁기 사용도 삼가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다.

하지만 이런 조용한 문화 덕분에, 집에서 쉴 때는 정말 평온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은 집 내부 인테리어에 매우 신경을 쓴다. 가구 배치, 조명, 벽지, 식물, 미니멀리즘 등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며 ‘홈 카페’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 좋아한다. IKEA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의 집문화는 한국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처음엔 주방 없는 집이나 복잡한 계약 절차에 당황할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내 공간을 더 깊게 누릴 수 있는’ 문화임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집을 구하고 사는 과정을 넘어서, 그들이 어떻게 ‘집’을 바라보는지를 이해하면 독일 생활이 훨씬 풍요로워진다. 필자 또한 한국에 있는 집보다 월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있는 집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독일에서 집을 구할 계획이 있거나, 현재 독일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철학이 드러나는 공간이라는 걸, 독일에서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