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뚜벅이 7년차입니다. 오늘은 독일에서 ‘자동차’는 생활 필수품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대중교통 vs 자가용 문화
독일은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답게 도로 위에는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같은 브랜드가 흔하게 보인다. 한국에서 독일을 떠올리면 '아우토반'이나 '자동차 왕국'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에 살아보면, 자동차가 꼭 생활 필수품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지역도 있고, 오히려 자가용보다 불편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독일에서 자동차가 얼마나 필수적인지, 대중교통과 자가용 문화의 차이를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았다.
독일 대중교통의 현실: 잘 돼 있지만, 100% 믿긴 어렵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 중 하나다. 도시 간 이동은 DB(도이체반) 열차를, 도시 내에서는 U-Bahn(지하철), S-Bahn(광역전철), 트램,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대도시인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같은 곳은 대중교통으로 거의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 필자는 독일 남부의 중소도시에 살고 있지만, 도보 5분 거리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어서 평소엔 자동차 없이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2023년부터는 Deutschland-Ticket이라는 월 49유로의 대중교통 통합 패스가 생겨서, 독일 전역의 지역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통근자나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다. 예전에는 열차 한 번 타면 20~30유로씩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파격적인 변화다. (2025년부터는 월 58유로로 인상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대중교통은 '정시 운행' 면에서는 생각보다 허술하다. 특히 지방 도시일수록 열차나 버스가 자주 지연되거나 갑자기 운행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여러 번 지각하거나, 열차가 취소되어 다음 열차를 1시간 넘게 기다린 경험이 많다. 특히 겨울철 폭설이나 파업 시즌에는 통근이나 여행에 큰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도 "DB는 믿지 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독일에서 자가용이 꼭 필요한 상황들
그렇다면 독일에서 자가용은 언제, 어디서 꼭 필요할까? 경험상 도심이 아닌 외곽 지역이나 시골 마을에서는 자가용이 사실상 필수다. 독일은 넓은 땅에 인구 밀도가 낮기 때문에,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까지는 보통 10~30분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중교통은 아예 없거나, 하루에 몇 대만 운행하는 경우도 있어서 자동차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시골에 있는 친구 집에 초대받았을 때, 버스는 평일에만 하루 3대 정도 운행되며, 주말엔 아예 없었던 적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 또 마트, 병원, 은행 같은 기본적인 생활시설도 가까운 도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외곽이나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은 자동차가 거의 생존 도구에 가깝다.
그리고 독일의 자동차 관련 제도는 한국과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독일은 자동차 보험료와 자동차세가 꽤 비싸고, 차량 정기검사(TÜV)도 매우 엄격하다. 주차 공간도 항상 넉넉하지는 않다. 반면, 연비 좋은 디젤차가 많고, 아우토반에서는 속도제한이 없는 구간도 있어 장거리 운전의 쾌감은 꽤 큰 편이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 사람들이 자동차를 ‘신분의 상징’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도시에서는 오래된 중고차를 타는 사람이 많고, 유명 브랜드의 고급차를 타고 다녀도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실용성과 유지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자동차 없이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자동차 없이도 생활이 가능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자동차가 꼭 필요하다. 특히 독일의 도시계획은 자전거나 대중교통 중심으로 설계된 곳이 많아서,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대도시에서는 차가 없어도 오히려 생활이 더 편할 수 있다. 복잡한 도심 주차나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고, 도보나 자전거로도 충분히 이동 가능하다.
반면, 아이가 있는 가정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집, 혹은 외곽 지역에 사는 경우라면 자동차가 생활 필수품이 된다. 실제로 독일 친구들 중에도 "도시 살 땐 차 필요 없었는데, 애 낳고 교외로 이사하면서 바로 차 샀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요즘은 카셰어링 서비스(Carsharing)도 활성화돼 있어서, 필요할 때만 차량을 이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Share Now'나 'Miles' 같은 앱을 통해 쉽게 자동차를 대여할 수 있다. 이건 자가용 없이도 자동차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독일에서 자동차는 꼭 ‘필수품’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어떤 생활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필요성이 확연히 달라지는 존재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도심에 살면 자동차 없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고, 외곽이나 교외에 산다면 자동차가 없으면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다. 한국보다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편이지만, 철저한 실용주의 속에서 필요한 사람은 꼭 가지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유하지 않는 선택도 자유롭다.
독일에서의 삶을 계획 중이거나, 현지 생활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현실적인 참고가 되길 바란다. 자동차를 살지 말지는 결국 나의 ‘삶의 반경’과 ‘우선순위’에 달려 있다는 걸 느낀다.
필자는 이런 갬성 가득한 사진을 얻기 위해 아직도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