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오래된 주택이 아직까지도 많고 이런 집에 살다 보면 고장나는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 때마다 한국처럼 수리공, 서비스 기사님을 부르면 월급의 절반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을 해보았을 것이다.
오늘은 최근 주방 수전이 고장나서 수리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독일에서는 왜 다들 셀프 수리를 할까?
독일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손재주가 정말 좋다는 것이다. 무언가 고장 나거나 수리가 필요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직접 고칩니다. 전등 교체는 기본이고, 벽을 뚫어서 선반을 설치하거나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일까지도 스스로 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이거 전문가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싶은 일도, 독일 친구들은 “이 정도는 직접 해야지~”라며 툭툭 해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간단하다. 독일에서는 수리공(Handwerker)을 부르면 비용이 정말 많이 든다. 출장비부터 시간당 인건비, 재료비까지 합치면 작은 수리 하나에도 수십 유로가 깨지기 일쑤다..
예를 들어 세면대 배수가 막혀서 수리공을 부르면 기본 요금만 100유로 가까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될 수 있으면 내가 직접 고친다’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
또한, 독일에는 DIY 문화가 잘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이면 대형 철물점(OBI, Bauhaus, Hornbach 등)에 가서 나사, 드릴, 나무판, 페인트를 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철물점들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뭔가를 만들고 고치려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은 느낌이다. 구체적인 사용법이나 제품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도와줘서, 초보자도 도전하기 쉽다.
주방 수전 셀프 교체한 이야기
독일에서 산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셀프 수리를 시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소심하게 시작했다. 전등 교체나 가구 조립 정도였는데, 점점 자신감이 붙으면서 본격적인 셀프 수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한 건 주방 수전 교체이다. 메탈로 된 수전에서 물을 사용하려고 하면 자꾸 물이 새는 것이다. 몇달을 방치하다가 남편 휴가와 해결하기로 했다. 수전 교체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 전문가보다 더 실력 좋은 독일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괜히 잘못된 수도관을 건드리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수전은 대형 철물점으로 유명한 Baummarkt 에서 살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저렴하게 Aldi에서 구매했다.
(이것이 우리의 오산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Aldi 제품이 나름 가격대비 내구성이 좋은 제품이 많기 때문에 이번에도 믿어 보기로 했다! 30유로 안되는 가격에 구매했다.
우선 수전 교체는 설명서만 잘 읽어 보면 너무 쉬워 보이는 작업이었다. 아쉽게도 이 제품은 독일어로만 적혀 있었지만, 그림 설명이 첨부되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쉬워보이는 설치와 달리 여러 반전이 있었다.
새로운 수전을 설치하려면 당연히 기존 수전을 제거해야 하는데 너무 오래된 것이라 녹슬어서 도저히 제거되지 않는 것이다. 계속 헛돌고 안빠져서 30분을 끙끙거렸던 것 같다. 독일 친구도 이런 경우는 드문데 계속 해낼 수 있다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남편과 나, 둘만 있었다면 바로 수리공을 불렀을 텐데, 독일 친구 덕분에 결국 제거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첫번째 관문을 넘기고 이제 새로운 수전 부품들을 연결하여 설치만 하면 되는데 새로산 수전의 호스 길이가 너무 짧아서 수도관에 연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 수전에서 쓰던 케이블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빠지지 않아 결국 근처 Baummarkt로 달려가 연장 어댑터를 구매하여 두번째 관문까지 넘겨 설치에 성공하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아무 제품이나 사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설치된 제품의 길이 및 크기를 잘 확인하여 Aldi나 Baummarkt에서 구매해야 한다. 비용이 이중으로 드는 것은 둘째치고 일을 여러번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것 또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잘 설치된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예상보다는 조금 힘들긴 했지만 오히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셀프 수리!!
물론 시작 전에는 물이 갑자기 쏟아지지 않을까 바스켓 두고, 주변에 수건도 깔아놓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도 해보니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가벼운 전등 수리나 콘센트 교체는 당연하고(물론 전기 관련 작업은 조심해야 하고, 법적으로도 인증된 기술자가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사전에 꼭 확인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수리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라서, 문제 있는 부분을 하나하나씩 고쳐나가고자 한다. 철물점에 가는 것 또한 굉장히 신나는 일이다. (통장이 텅텅 비어가는 단점 빼고는,,^^)
셀프 수리 문화의 장단점과 한국과의 비교
셀프 수리 문화는 분명 매력적이다. 비용도 절약되고, 내가 내 공간을 직접 손본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생기는 것 같다. 특히 독일처럼 ‘시간 = 돈’이라는 인식이 강한 나라에서는, 평소에 이런 기술을 익혀두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또 독일의 집 구조가 튼튼하고 표준화되어 있어서, 필요한 도구와 부품만 있으면 누구나 작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처음에는 도구부터 하나하나 사야 하다 보니 초기 투자 비용이 꽤 들고, 실수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 필자는 예전에 벽에 구멍 뚫다가 석고가루를 온 집안에 날린 적도 있었고, 수리 후 배수구를 조이는 걸 깜빡해서 물이 줄줄 샜던 적도 있다. 그래서 항상 ‘계획-도구 준비-매뉴얼 숙지’가 철저해야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이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집 구조가 다르고, 아파트는 관리소를 통해 수리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보니 직접 뭔가를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보면 독일의 셀프 수리 문화는 ‘생활의 기술’이자 하나의 ‘삶의 태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낯설었던 셀프 수리, 이제는 남편과 나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복잡한 전기공사나 보일러 같은 건 전문가에게 맡기지만, 일상 속의 작은 수리는 이제 두렵지 않다. 혹시 독일에서 살고 계신다면, 한 번쯤 도전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직접 고친다는 뿌듯함, 생각보다 꽤 괜찮답니다 :)